매년 1월이면 전국 8,500여 개 기업의 인사·총무 담당자들이 같은 일을 반복한다. 장애인고용부담금 신고서를 작성하고,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르는 부담금을 납부하는 것이다. 2020년 7,807억 원이었던 전체 신고액은 2024년 9,179억 원으로 불어났고, 5년간 누적 4조 2,503억 원이 장애인고용촉진기금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런데 같은 기간 민간기업의 장애인 고용률은 고작 3.03%. 의무고용률 3.1%에도 못 미치는 숫자다.
돈은 걷히는데 사람은 안 늘어난다. 이 단순한 사실이 말해주는 것은 명확하다. 제도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왼쪽 주머니에서 오른쪽 주머니로
먼저 공공기관의 현실부터 보자. 2024년 기준 교육청의 장애인 고용률은 2.52%, 헌법기관은 2.83%다. 법정 의무고용률 3.8%에 한참 못 미친다. 정부가 민간기업에 “장애인을 더 뽑으라”고 요구하면서 정작 자기 조직에서는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공공기관이 내는 부담금의 성격이다. 민간기업의 부담금은 기업 이익에서 나온다. 실질적 재정 압박이 된다. 하지만 공공기관의 부담금은 국민 세금에서 나와서 다시 국가 기금으로 들어간다. 왼쪽 주머니에서 오른쪽 주머니로 돈을 옮기면서 “우리도 벌금을 냈다”고 말하는 꼴이다. 징벌적 효과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국민의 세금으로 장애인 복지를 위한 기금을 적립하겠다는 취지라면, 차라리 그 자리에 장애인을 직접 고용하는 편이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길이다. 고용도 되고, 부담금도 안 나간다. 부담금을 내는 것 자체가 이미 정책 목표 달성의 실패를 의미하는데, 그 실패의 비용을 세금으로 메우고 있는 셈이다.
소방서에 “왜 불을 안 끄느냐”고 벌금을 매기는 제도
제도의 모순은 장애인 복지 현장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다. 장애인활동지원 제공기관을 생각해보자. 이 기관의 존재 이유 자체가 장애인의 일상을 돕는 것이다. 활동지원사들은 매일 장애인의 이동을 보조하고, 신체를 수발하고, 생활 전반을 지원한다. 장애인 복지의 최전선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기관이 상시근로자 100명을 넘기면, “장애인을 충분히 고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담금을 내야 한다. 활동지원사의 직무는 이용자를 물리적으로 들어 옮기고, 이동을 안내하고, 일상생활을 보조하는 일이다. 신체적 역량이 직무의 핵심인 자리에 특정 장애를 가진 분을 배치하면 서비스 이용자의 안전이 위협받는다. 기관이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직무 자체가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하루 종일 장애인을 위해 일하는 조직이, “장애인을 안 뽑는 조직”으로 분류되어 벌금을 내는 현실. 이것은 소방서에 “왜 불을 안 끄느냐”고 벌금을 매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현행 제도는 “장애인을 위해 무엇을 하느냐”는 전혀 보지 않고, 오직 “장애인을 몇 명 고용했느냐”라는 단일 숫자만 본다.
고용할 사람이 없다는 변명, 절반만 맞다
기업들은 말한다. “고용하고 싶어도 적합한 장애인을 찾을 수 없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이 주장은 절반만 맞다.
장애인 경제활동참가율은 35.4%, 고용률은 34%에 불과하다. 전체 인구 고용률 63.3%의 절반 수준이다. 등록장애인 265만 명 가운데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기업이 원하는 직무 능력과 구직 장애인의 역량 사이에 구조적 불일치가 존재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건설업 현장, 제조업 생산라인, 의료기관 임상 현장처럼 신체적 요건이 직무의 핵심인 업종에서 장애인을 일률적으로 3.1% 고용하라는 것은 현실과 괴리가 있다.
그런데 반대편 데이터도 있다. 2024년 1,000인 이상 대기업의 장애인 고용률은 전년 대비 0.09%p 상승하며 전체 고용률 상승을 견인했다. 이 기업들은 직무를 재설계하고, 자회사형 표준사업장을 세우고, 지원 체계를 갖출 자원이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해냈다. “고용할 사람이 없다”는 주장이 “직무를 재설계할 의지가 없다”의 다른 이름은 아닌지, 기업 스스로 물어봐야 할 질문이다.
부담금보다 고용이 비싸다는 냉정한 산수
제도가 작동하지 않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간단하다. 부담금을 내는 것이 고용보다 싸기 때문이다.
2026년 기준 장애인을 한 명도 고용하지 않은 기업이 내야 하는 부담금은 미달 1인당 월 약 216만 원. 법정 최저임금과 같은 수준이다. 그런데 장애인을 실제로 고용하면 월급 외에 4대 보험, 편의시설 설치, 직무 재설계, 동료 교육, 관리 인력 배치 등의 비용이 추가된다. 경제적으로만 따지면 “벌금을 내고 끝내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되어 버린다.
이것은 기업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다. 유인 구조의 실패다. 부담금이 고용 비용보다 낮은 한, 기업이 부담금 납부를 택하는 것은 예정된 결과다. 30년 넘게 같은 구조를 유지한 결과가 “매년 부담금은 사상 최대, 고용률은 제자리”인 현재의 악순환이다.
설계도를 바꿔야 건물이 바뀐다
문제의 뿌리는 명확하다. 1991년에 설계된 제도가 2026년의 현실을 담지 못하고 있다. 업종과 직무의 다양성은 폭발적으로 늘었는데, 제도는 여전히 “상시근로자 수 × 3.1%”라는 단일 공식만 고집한다.
그렇다고 업종별로 의무고용률을 낮춰주기 시작하면 모든 기업이 “우리도 예외”라고 주장하게 되고, 제도의 뼈대 자체가 무너질 위험이 있다. “의무의 수준”을 건드리는 순간, 바닥을 향한 경쟁이 시작된다.
답은 “목표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달성 방식을 다양화하는 것”에 있다고 본다.
의무고용률은 동일하게 유지하되, 직접 고용 외에도 장애인 표준사업장 도급, 자회사형 표준사업장 설립, 장애인 직업훈련 프로그램 투자 등 다양한 경로를 의무 이행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건설사가 현장에 장애인을 배치하기 어렵다면, 그 건설사가 출자한 자회사에서 세탁·급식·사무지원을 장애인이 담당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장애인 복지 현장에서 일하는 기관에게는 그 사회적 기여를 고용률 산정에 반영하는 보정 장치가 필요하다. 공공기관에는 부담금이라는 금전적 제재 대신 기관장 인사평가 반영, 미달 기관 명단 공표 강화 같은 실질적 압력 수단을 적용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담금 수준을 고용 비용보다 높게 올려야 한다. “고용이 더 싼 선택”이 되게 만들거나, 고용 시 장려금과 지원을 대폭 확대해 “고용이 더 이득인 선택”이 되게 만들거나. 이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움직여야 한다.
숫자가 아니라 사람을 세는 제도로
장애인고용부담금은 “사회연대책임”이라는 숭고한 이념 위에 세워진 제도다. 장애인을 고용하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 사이의 경제적 부담을 공평하게 나누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이 제도는 “사람을 고용하는 제도”가 아니라 “돈을 걷는 제도”에 가까워졌다.
장애인을 돕는 기관이 장애인 미고용으로 벌금을 내고, 정부는 세금으로 벌금을 내며, 기업은 고용보다 벌금이 싸서 벌금을 낸다. 모두가 벌금을 내면서 아무도 사람을 뽑지 않는다.
제도의 목적은 부담금을 걷는 것이 아니다. 장애인이 일하게 하는 것이다. 숫자만 세는 낡은 설계도를 접고, 사람을 세는 새 설계도를 펼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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