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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인간의 종말: 포스트휴머니즘, 사이보그, 그리고 동물과의 공존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안경, 스마트폰, 혹은 인공 심박동기 등 다양한 기술에 의존하며 살아갑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이미 기계와 유기체가 결합된 ‘사이보그’일지도 모릅니다.

전통적인 서구 철학은 오랫동안 육체를 정신보다 열등한 것으로 폄하하며, 완벽하고 이성적인 ‘인간’을 세계의 중심에 두어 왔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으로 대표되는 이 이상적인 인간상은 사실 백인, 남성, 그리고 비장애인만을 보편적인 기준으로 삼은 배타적인 개념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주목받는 **포스트휴매니즘(Posthumanism)**은 이러한 오만한 인간 중심주의에 제동을 걸며, 우리가 기술, 환경, 비인간 생명체와 얼마나 깊게 얽혀 있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블로그 독자 여러분을 위해, 기술과 생명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우리가 어떻게 새로운 공존을 모색할 수 있을지 포스트휴매니즘의 핵심 쟁점 세 가지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1. 트랜스휴머니즘의 환상 vs. 포스트휴먼의 포용

포스트휴매니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종종 혼용되는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과의 차이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트랜스휴머니즘은 과학 기술을 통해 인간의 육체적, 인지적 한계를 극복하고 수명을 연장하려는 목적을 가집니다. 이들은 인간의 진화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믿으며, 나노 기술이나 유전 공학 등을 통해 진화를 통제하고 질병과 죽음마저 초월하고자 합니다. 문제는 이들이 육체적 고통이나 생물학적 유한함을 ‘해결해야 할 질병’으로 취급하며, 과거 우생학의 이상과 맞닿아 있는 극단적인 인간 중심주의를 보인다는 점입니다.

반면, 포스트휴매니즘은 기술을 통해 육체를 벗어나거나 완벽해지려 하기보다는 육체적 취약성과 유한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합니다. 늙고 병들며 타인에게 의존해야 하는 몸을 결핍이 아닌 자연스러운 조건으로 긍정하는 것입니다.

2. 공상과학을 넘어선 현실: ‘iCrip’과 일상 속 사이보그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는 그녀의 유명한 「사이보그 선언」에서 현대 사회가 인간과 동물, 인간과 기계, 물리적인 것과 비물리적인 것 사이의 경계가 무너진 시대라고 규정했습니다.

포스트휴매니즘의 관점을 수용한 장애 연구(Disability Studies)는 이 사이보그 개념을 활용해 새로운 정체성인 **’iCrip(기술과 결합된 장애 정체성)’**을 제안합니다. 과거에는 보장구나 휠체어가 장애인의 결핍을 채워 정상인처럼 보이게 하려는 도구로 여겨졌지만, iCrip은 첨단 의족을 달고 뛰는 육상 선수처럼 기계와 결합된 몸이 정상/비정상의 이분법을 뒤흔드는 주체적이고 새로운 존재 방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현실 속 사이보그의 삶은 공상과학 영화처럼 늘 강하고 섹시한 것만은 아닙니다. 의족이 피부에 쓸려 상처를 입기도 하고, 첨단 원격 돌봄 시스템(telecare)에 의해 24시간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며 사생활을 잃을 위험에 처하기도 하며, 기계의 고장이나 정전에 생존을 위협받는 극단적인 취약성을 겪습니다. 포스트휴매니즘은 이러한 상호의존성과 취약성마저 포스트휴먼의 본질적인 조건으로 끌어안습니다.

3. 이성을 넘어선 공감: 동물권과 ‘쑬루센(Chthulucene)’

포스트휴매니즘의 비판은 인간과 기계를 넘어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허무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역사적으로 장애인이나 유색인종 등 소수자들은 ‘비이성적’이거나 ‘동물과 가깝다’는 이유로 억압받아 왔으며, 따라서 동물을 해방시키는 것과 소수자의 권리를 되찾는 것은 서로 연결된 문제입니다.

이성이나 언어 능력을 기준으로 동물을 도구화하던 기존의 폭력을 반성하며,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와 같은 철학자들은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의 유명한 질문인 **”그들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가?”**에 주목합니다. 인간과 동물을 윤리적으로 연결하는 핵심은 이성이 아니라, 모두가 상처 입고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몸을 가졌다는 ‘절대적 취약성’과 수동성입니다.

이에 도나 해러웨이는 인간 중심적인 ‘인류세’ 대신,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흙 속의 퇴비처럼 서로 밀접하게 얽혀 살아가는 **’쑬루센(Chthulucene)’**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제안합니다. 그녀는 “아이를 낳지 말고 친척을 만들자(Make kin, not babies!)”라고 외치며, 혈연을 넘어 다른 종과의 깊은 유대와 돌봄의 관계를 맺을 것을 촉구합니다.

결론적으로, 포스트휴매니즘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나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기계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며, 다른 동물들과 다를 바 없이 고통을 느끼는 육체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기술을 오만하게 남용하지 않고, 환경 및 다른 생명체들과 포용적으로 공존하는 진정한 미래를 그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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